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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느의 기적,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by TECO 2024. 3. 4.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저서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에서 나온 내용이 화폐의 가치, 수요와 공급, 선물거래, 경제에 대한 이해 등 눈여겨 볼만한 요소가 많아 내용을 가져와 봤습니다.

환율시세를 이용한 차익거래

1924년 2월 , 카스틸리오니와 넬켄 박사가 저자인 앙드레 코스톨라니와 만하이머 박사에게 설명한, 프랑스 화폐인 '프랑'으로 소위 환차익의 원리를 이용한 사업계획이었죠.

 

"당시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이겼지만, 출혈이 막대했습니다. 나라에 금은 있었지만, 경제상황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들은 공동으로 1억 프랑을 공매도하는 것을 시작으로, 또 다른 1억 프랑을 조달할 수 있으니 상환을 몇 년 뒤 연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하이머 박사는 그 계획을 듣고, 카스틸리오니와 만하이머 2인조 모임에 다른 은행가들, 유럽의 암스테르담, 스위스, 빈 등 여러 타 금융계의 투자자들이 동참하며, 프랑화 절하에 투자, 조작하기 위한 집단이 조직되었습니다.

프랑 화폐 가치의 하락, 프랑화 약세

첫 번째, 이들은 3~6개월 단위로 수백만 프랑을 바젤, 마드리드, 뉴욕, 암스테르담, 런던에서 공격적으로 팔았습니다. 

두 번째, 끌어모을 수 있는 프랑을 전부 동원해 미국 달러와 영국 파운드는 물론 파리 증권거래소에서 선물로 외국인 주식(금광, 국제 유가 등등)을 사들였습니다. 즉, 프랑을 이용해 외국인 주식을 선물거래로 사들였고, 이 말은 구매 당시 정한 가격으로 팔 것을 약정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세 번째, 두 번째 사항과 동시에 세계언론으로 프랑스의 재정 현황에 대한 경고 기사를 내보냅니다. 이를 통해, 프랑스 여론은 두려움에 빠지고 그들의 예금을 외국 유가증권으로 전환하고, 프랑스에서 자본이 국외로 빠져나갈 수 있기를 요구했습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공포에 사로잡혀 외국으로 자본을 빼내고 싶어 하는 것이죠. 

 

프랑화 공매도 → 프랑으로 유가품 선물 매수 (=프랑선물매도)   언론플레이로 공포조성    화폐가치 하락

선물 거래 이해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가 되며, 프랑스 프랑의 가치를 압박하고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프랑이 하락하고, 비관론이 확산되고, 프랑 매도(판매)를 부추겼습니다. 

시장 과열과 투기, 노름판 형성

이제 이것은 금융시장이라기보다 노름판에 가까운 현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대형 금융기관은 물론, 소규모 도박꾼모임에 속한 빈의 금융가들이 개인적으로 발 벗고 나서서 이 프랑 노름판에 가세했습니다. 빈의 여론은 카스틸리오니의 손에 끌려다니며, 상인, 기업가 할 것 없이 투자 의욕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판에 들어오려 했습니다. 이것 말고는 마땅히 투기할 만한 거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프랑의 가치가 오스트리아 빈의 증권거래소에서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가파르게  하락했으며, 프랑스는 물론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까지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여기저기서 경제위기가 닥쳐왔지만 사람들은 이 위험한 게임에 베팅했죠.

 

또한 앞서 말씀드린 두 번째, 외국인주식(금광, 국제 유가 등등)을 선물매입, 즉 선물로 프랑을 파는 것입니다. 이는 종목과 상관없이 샴페인, 고급자동차 온갖 경제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유가품을 신용으로 사들였습니다. 쉽게 말해 빌려서 샀다는 말, 계속해서 선물로 프랑을 팔았습니다. 당시 규모가 가장 큰 거래는 파리의 상품선물거래소에서 이루어지며 고무, 밀, 유채, 특히 설탕이 장기 선물로 거래되었습니다. 프랑화가 하락하면 이 상품들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여러모로 확실했습니다.

 

원론적으로 이러한 거래는 상품의 매수라 볼 수 없으며, 1970년대 상품거래소에서 있었던 달러화에 대한 투기와 마찬가지로 순전한 외환투기였습니다. 금리는 높았고, 계속해서 더 오르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엄청난 시세 차익을 기대하며 전혀 개의치 않아 했습니다. 프랑스은행은 물론 정치가나 전문가들까지 이러한 프랑화의 추락 사태를 망연자실한 채 지켜보았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출산율처럼요) 파리에서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나날이 상승해서 전쟁이전에 1달러에 5프랑이었던 환율이 1달러당 10프랑, 1달러당 15프랑으로 오르더니, 1926년 1달러당 28프랑이 되는 엄청난 상황이 도달했습니다.

프랑 화폐 구제 진정과 해소

프랑스 정부에서 프랑스 민간 은행인 라자르프레르 은행에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을 위임했습니다. 정부로부터 임무를 받아 모든 외환시장에 풀린 프랑을 사들이기 시작했으며, 뉴욕의 JP모건 은행이 사태해결을 위해 프랑스 은행에 1억 달러를 빌려준다는 뉴스가 나오자, 버블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프랑화 투기꾼들은 불안감에 빠지며 시장이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판세가 뒤집혔습니다. 바젤, 암스테르담, 제노바, 빈 등지에서 수백만 달러의 매수요청이 밀려들어왔습니다. 프랑화에 대한 수요가 오르면 어떻게 될까요? 가치가 상승하겠죠. 그렇게 며칠뒤 1924년 3월 8일 1달러당 15프랑으로 떨어지며 안정화되며 프랑화가 구제되었습니다. 이것이 '마르느의 기적'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프랑화 말살 작전에서 프랑스가 승리를 거둔 것이었습니다.

 

외환에 투자했던 와인, 고급차, 도자기 등 그 밖의 다른 것에 투자했던 프랑화로 진 채무는 이제 두 배의 가격으로 갚아야 했기 때문에 수많은 기업가, 은행가, 중개인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투자차액을 변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자는 이야기 초반에 나온 카스틸리오니였습니다.  

 

 

이상 저서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여 이번 글을 작성하였습니다.